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활공장(滑空場) - 금시아
여만
2018. 3. 15. 12:41
활공장(滑空場)
금시아
바람의 깃털을 훔쳐와
날개를 전사(傳寫)해서 새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 있다
나비 한 마리 제 등을 찢고 날아가듯, 발의 동력으로 낭떠러지를 내달리면 등을 활짝 펼치며 활공하는
한 마리의 새,
날개는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틈, 선두와 후미 그 사이를 신세 지는 일이어서 등 떠미는 경사를 내달려 바람 속으로 뛰어들면, 날개란 아찔한 벼랑이 내어주는 난간이란 걸 알게 된다
새는 글썽이는 속도로 날 수 있어
두 발을 구름 속에 숨겨 놓는다
간혹 지상의 어떤 날개는 불량하게 태어나기도 하는데
내 몸에는 대체도 교환도 가능한 몇 벌의 불량날개가 있어 지상을 버리고 박차고 오르면 불량은 덜 자란 아기별 하나를 떨어뜨리고 작은 어른별을 하나 건져 올리기도 한다
행글라이더 하나,
태양의 이마에 막 입을 맞춘다
⸺계간 《시와 사람》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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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아 / 1961년 광주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시집『툭,의 녹취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