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우리의 물결은 어디서 일고 있습니까 -한세정
여만
2018. 1. 13. 18:26
우리의 물결은 어디서 일고 있습니까
한세정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 고여 있습니다
발끝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아무리 숫자를 세어도
나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간절한 말들은 왜 수면을
뚫지 못하는 걸까요
건네고 싶은 말들이
파문을 맴돌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동그라미를 그려
웃는 당신의 얼굴을
넉넉히 그려둘 걸 그랬습니다
연필을 쥔 작은 주먹을 움켜쥐고
당신이 사각사각 옮겨주었던
내 이름의 문양을
더 많이 적어볼 걸 그랬습니다
물결이 일 때마다
낯설어진 이름의 문양들이
형체도 없는 나를 끌어 올립니다
당신의 주름진 눈가에
파도가 일렁이고 있습니다
없는 손끝을 뻗어
당신의 바다에 가 닿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물결은 어디서 일고 있습니까
—《현대시》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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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정 /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입술의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