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실물 - 김종미
여만
2015. 10. 8. 20:12
실물
김종미
거울을 보며 나는 실물일까 그런 생각을 한다
가만히 내 얼굴을 만지며 한 번도 실물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란 생각을 한다
보지도 않고 제 입속에 정확하게 밥을 떠 넣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문득 깨달아버린 정신과 의사는
순한 무릎을 맛보듯
자기 팔꿈치를 맛보려고 혀를 내밀어 우스꽝스러운 사투를 벌이지
살아있는 척하는 당신들은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자벌레 곁을 가늘고 긴 뱀 한 마리가 스르르 지나가듯
낭비가 아름다운 시간이 있다
천천히 귀를 만진다든지 이마를 만지면
이승에서 가장 먼 곳을 걸어가는 기분
인사하는 마네킹은 허리의 각도로 오늘의 운세를 조절할까
그냥, 웃었는데 비웃었다고 화를 낸다면
가만, 있었는데 화냈다고 화를 낸다면
나는 내 얼굴에 대한 의심이 든다
그런 기분은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촉촉한 생화 같아서 만져보았는데 까칠한 조화였거나
까칠한 조화 같아서 만져보았는데 촉촉한 생화였다면
그 반반의 가능성에 대해
내 손은 실물일까 그런 생각을 한다
오독의 쓸쓸함을 이겨내기 위해 내 얼굴의 촉감을 잊고 네 얼굴의 촉감을 기억해야 할까
비가 내린다 눈을 감고 손을 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