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암수 두 마리 뱀이 -한성례
여만
2015. 6. 4. 07:00
암수 두 마리 뱀이
한성례
서로 꼬리를 먹어간다
해가 설핏 기울었다
뇌간*이 반대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본능의 밑바닥에 남은 감각만으로
무의식의 빗장이 풀린 채
서로에 취해 잘금잘금 꼬리부터 먹어간다
양쪽이 똑같은 속도로 줄어든다
길이가 줄어들수록 순환의 고리가 더욱 단단해진다
상징을 먹고 관념을 먹고 포만감을 먹는다
뱀 두 마리의 길이가 줄어들어 무한히 줄어들어
점점 둥글어진다
새빨간 피를 서로 빨아들여
커다란 원 하나로 완성된다
영원히 서로의 몸을 먹어가는 뱀 두 마리
붉은 해가
지금 막 바다에 풍덩 빠졌다
* 뇌간腦幹 :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부위이며, 모든 신경이 이곳을 통과한다.
—《시사사》2014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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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례 /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1986년《시와 의식》으로 등단. 한국어 시집『실험실의 미인』, 일본어 시집『감색치마폭의 하늘은』,『빛의 드라마』. 번역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