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5. 3. 30. 08:00

지평선 

 

    김혜순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놓았나
흰낮과 검은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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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 1955년 울진 출생. 1979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어느 별의 지옥』『우리들의 陰畵』『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기계』『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한 잔의 붉은 거울』『당신의 첫』『슬픔치약 거울크림』. 시론집『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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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을 가른 채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갈라진 사이, 저 쪼개진 틈으로 일몰이면 핏물이 번져온다. 저 지평선을 누가 쪼개 놓았나. 누가 하루를 흰 낮과 검은 밤으로 나누어 놓았나. 당신은 낮의 매가 되고 나는 밤의 늑대가 되어 엇갈린 채 저 지평선 근처를 스쳐 지나가기도 하리라.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