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벽돌의 방식 -박찬세
여만
2015. 1. 12. 10:00
벽돌의 방식
박찬세
벽돌은 벽과 돌의 합성어다
돌
시위 현장에서 벽돌은 깨어진다
깨어진 벽돌은 벽과 돌로 나누어져
벽을 남기고 순수한 돌로 돌아가 공중을 날아다닌다
돌이 떨어지는 곳에서
상처가 생기고 견고한 벽이 만들어진다
벽돌이 깨어진 틈으로 석기시대가 흘러나온다
벽
공사장에서 벽돌은 시멘트의 힘을 빌린다
서로 밟고 올라서면서 돌을 버리고 벽이 된다
벽이 모여 방이 되기도 하고 집이 되기도 하지만
순수한 벽이 되기도 한다
이 경우 장이란 말이 앞에 붙거나 성이란 말로 전환된다
여러 가지 색채를 띠면서
침묵과 사상을 가진다
어떠한 틈도 용납할 수 없다와
언젠간 무너질 것이라는 가정을 함의한다
길
벽돌은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린다
단단한 경계석 안, 평평한 모래 위에서
서로 어깨와 어깨를 나란히 할 때
벽돌은 벽과 돌을 모두 버리고 반듯한 길이 된다
벌어진 틈마다 채워 넣은 고운 흙은 씨앗이란 말을 함의한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서 꽃이 핀다
벽돌은 벽과 돌의 합성어이지만 쓰는 방식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문학·선》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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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세 / 1979년 충남 공주 출생. 2009년《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