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갸우뚱에 대하여 -김소연

여만 2014. 3. 28. 07:00

갸우뚱에 대하여

 —신해욱에게

 

   김소연

 

 

 

여긴 괜찮아

솜이 삐져나오는 곰인형처럼

우리를 들켜도 괜찮아

 

이리 와, 간신히 노래를 듣자

흔들리는 우리의 천한 부위를 노래로 괴자

동전, 화투장, 장판쪼가리처럼

 

한 겹으로 모자라면

두 겹으로 그래도 모자라면

세 겹으로

 

이를테면

외국에서 먹은 김치찌개처럼

더없이 부실해도 그때는 더없이 좋았던

그 이상한 맛을 기억해보자

그 으슬으슬했던 한기를 기억해보자

 

가을볕이

가난한 자의 속내를 X-ray처럼 투과할 때

검은 그림자가 발끝에서 간당간당해질 때

 

새하얀 창밖이 새까매지도록

우리 무릎이 양파처럼 말끔해지도록

방바닥에 놓여진 인형처럼 누워 있자

 

밤이 왔고

우리들의 검은 생각들로 밤이 깊어진 거라고

생각해버리자

 

여긴 괜찮아

침묵도 공처럼 통통 튀어가다 쉬고 있는 여기

잘못 접은 종이비행기처럼

갸우뚱하게 누워 있자

곰인형 옆의 곰인형처럼 이리 와

나란하게 기대어 있자

 

 

   —《현대시학》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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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눈물이라는 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