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4. 2. 11. 07:00

새의 존재

 

   김행숙

 

 

 

발의 높이가 다른 존재들

순간적으로 계단을 만들고

허물어뜨리는

 

수천 개의 발을 가진 듯

시시각각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음악이 시작되는 지점 같은

 

심장을 누르면 새들을 죽일 수 있다*

그것이 누구의 심장이든

심장까지의 거리는

사랑과 죽음을 혼동하는 연인들보다 가까워

 

누군가는 눈보라 속 무분별한 벌판을 건너가며 발의 감각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눈과 얼음의 땅이 푹 꺼질 때

눈을 꾸욱 누르고

얼음의 새파란 살결을 부수는

발처럼

새의 심장은

 

허공을 누르며 날아갔을 것이다

 

 

    ———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월간 에세이》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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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 현재 강남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