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옮겨가는 초원 - 문태준

여만 2013. 12. 1. 07:00

옮겨가는 초원

 

      문태준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 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 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나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 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  문태준의 시집「먼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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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處暑」외 9편 당선.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먼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