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양팔저울의 비애 -이향란

여만 2013. 9. 23. 07:00

양팔저울의 비애

 

  이향란

 

 

 

두 눈 두 귀가 있듯이

두 입 두 가슴도 차라리 있었다 하자

본디 그러했는데 닳거나 진화된 거라고 치부해 버리자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깊은 것에게는

입과 가슴 하나씩 더 달아주어 통증을 덜어주자

 

어느 곳으로 새어나가든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든

그것은 오로지 두 입과 가슴의 평형을 위한 것

더 이상 잴 수 없는 생의 질량을 끌어안기 위한 것

 

안으로 파고드는 마음과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의 충돌을 어루만져

당연히 그러하다는 듯 충분히 이해된다는 듯

양팔이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음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그러나 섞일 수 없음이 비극이라는 듯 희극이라는 듯

 

     —《시와 미학》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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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란 / 강원 양양 출생.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2002년 시집 『안개詩』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슬픔의 속도』『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