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낮술 한잔을 권하다 - 박상천
여만
2013. 9. 20. 07:00
낮술 한잔을 권하다
박상천
낮술에는 밤술에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거나, 뭐 그런 것. 그 금기를 깨트리고 낮술 몇 잔 마시고 나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햇살이 황홀해진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아담과 이브의 눈이 밝아졌듯 낮술 몇 잔에 세상은 환해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낮술에는 바로 그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어 첫 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술에서부터 ‘싸아’ 하니 온몸으로 흩어져간다. 안전선이라는 허명에 속아 의미 없는 금지선 앞에 서서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그대에게 오늘 낮술 한잔을 권하노니, 그대여 두려워 마라. 낮술 한잔에 세상은 환해지고 우리의 허물어진 기억들, 그 머언 옛날의 황홀한 사랑까지 다시 찾아오나니.
—시집『낮술 한잔을 권하다』(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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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랑을 찾기까지』『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낮술 한잔을 권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