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체육 입문 -이민하
여만
2013. 9. 3. 07:00
체육 입문
이민하
한 사람이 공놀이를 한다
공은 공중을 돌아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공이 바닥에 닿기 전에 발은 움직인다
다시 머리 위로 솟구칠 때
구부러진 발등과 이마는 키스처럼 가깝고
두 사람이 공놀이를 한다
공은 두 손에서 뻗어 가슴을 향해 파고든다
공중에 박힌 눈은 온몸을 잡아당기고
공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두 사람은 점점 멀어진다
덤불에 처박혀 달걀처럼 깨질 때
공을 주우러 간 그림자는 기차처럼 길고
손을 털고 사람들이 떠난 길 위에
수만 갈래 힘줄을 뻗는
공은 지구보다 넓고
하늘이 한 뼘 더 두꺼워진 다음날
낯선 공이 떠도는 공터에 모여
세 사람이 공놀이를 한다
공은 공중으로 솟구쳐 공중으로 나아간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방향을 잡고
공은 새가 된다
한 사람에게 날아가지만 세 사람의 심장이 뛴다
두 사람이 공을 주고받을 때
망을 보는 한 사람은 비밀처럼 뜨겁고
—《현대시》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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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하 / 1967년 전북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