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모래의 각(角) -정숙자

여만 2013. 7. 22. 07:00

모래의 각(角)

 

    정숙자

 

 

 

 

닳아지면 둥글어지고 둥글어지면 다시 깨졌다

 

늘 새로운 각이 솟았다

웅크리고 깨지고 죽고 죽어 다시 굴렀다

영원히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소멸에 이르는 길은 온전히 몸 벗는 일

바위를 벗고 돌을 벗고 최후의 각마저 벗고 낙타가 차올리는 발자국마다 송이송이 돌아가는 흙먼지들아

드디어 날아가는 명사산(鳴沙山) 능선들아

버리는 것은 줄이려는 것

줄이는 것은 벼리자는 것

둘레 40,000km 덩어리째 떠도는 이 행성도 어느 먼 하늘에서는 별이라 호칭하리라

 

모난 꽃들, 떠오른 발들, 물소리 삐걱대는 가슴팍들아

완전 마모의 시간을 찾아 나뒹구는 검은 돌들아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

정숙자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뿌리 깊은 달』, 산문집『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