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나비 수건 -이정록
여만
2013. 7. 19. 07:00
나비수건
-어머니학교 33
이정록
고추밭에 다녀오다가
매운 눈 닦으려고 냇가에 쪼그려 앉았는데
몸체 보시한 나비 날개, 그 하얀 꽃잎이 살랑살랑 떠내려가더라.
물속에 그늘 한 점 너울너울 춤추며 가더라.
졸졸졸 상엿소리도 아름답더라.
맵게 살아봐야겠다고 싸돌아다니지 마라.
그늘 한 점이 꽃잎이고 꽃잎 한 점이 날개려니
그럭저럭, 물 밖 햇살이나 우러르며 흘러가거라.
땀에 전 머릿수건 냇물에 띄우니 이만한 꽃그늘이 없지 싶더라.
그늘 한 점 데리고 가는 게 인생이지 싶더라.
—《시산맥》 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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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 졸업.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혈거시대' 당선.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제비꽃 여인숙』『의자』『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