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순간의 미학 - 박지웅
여만
2013. 6. 22. 07:00
순간의 미학
박지웅
바람 가운데 잠자리와 향나무 끝이 만났다
흔들리는 새순 그 아주 끝에
앉나 싶더니 홀연 물러나 바람을 탄다
먼저 눈 맞추고 있다 바람을 읽고 있다
그만 앉아도 될 법한데 쉬운 일을 쉽게 하지 않는다
잠자리는 맨 처음을 떠올렸을까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저 초록의 끝은 입술이다, 저 잠자리는 입술이다
입술이 입술 앞에 멈추어 있는 것이다
잠자리와 잠자리가 아닌 것 사이로
새순과 새순이 아닌 것 사이로
구름이 들어왔다 슬그머니 나가자
하늘이 푸르고 가느다랗게 눈을 뜬다
저 가까운 거리에 술렁이는 것은 바람의 일이 아니라
태어나 처음 벌이는 야릇한 거래
닿을 듯 말 듯 눈 맞추다
어느 결에 두 입술 맞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향나무 한 그루 뒤로 끄덕 넘어간다
—시집『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201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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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 1969년 부산 출생.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시와 사상》신인상, 2005년〈문화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