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3. 6. 15. 07:00

 

   이승희

 

 

 

오랜 후회 쪽으로

자꾸만 살이 닿을 때

한 집 건너오는 동안 몸이 반쯤 지워진

노래들

따뜻했다

어떤 맹세는

어깨 위 물방울처럼 이해되었고

어떤 말은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 손을 놓아도 되는 거리가 있는가

 

이 모든 결의 안쪽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

오늘은 어제 도망치고 싶었던 내일이

아니었다고

상한 걸음마다 바람 불었다

내가 당신을 견디고

당신이 나를 견디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잊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사랑의 방식으로

우리는 결에 이르기도 한다

익명의 여행자처럼

어긋남의 골목을 지나

지워진 입들이 폭우로 내리는 밤은

어두웠으므로

 

조금만 덜 어긋났으면

나는 당신의 결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학동네》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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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97년에『시와사람』으로, 1999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