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3. 6. 7. 07:00

밤의 독서

 

     이장욱

 

 

 

   나는 깊은 밤에 여러 번 깨어났다. 내가 무엇을 읽은 것 같아서.

 

   나는 저 빈 의자를 읽은 것이 틀림없다. 나는 밤하늘을 읽은 것이 틀림없다. 나는 어지러운 눈송이들을, 캄캄한 텔레비전을, 먼 데서 잠든 네 꿈을,

   다 읽어버린 것이

 

   의자의 모양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눈발의 격렬한 방향을 끝까지 읽어갔다. 난해하고 아름다운,

   텔레비전을 틀자 개그맨들이 와와 웃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나도 잠깐 웃었는데,

 

   무엇이 먼저 나를 슬퍼한 것이 틀림없다. 저 과묵한 의자가, 정지한 눈송이들이,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내 쪽을 바라보는

   개그맨들이

 

   틀림없다. 나를 다 읽은 뒤에 탁,

   덮어버린 것이.

 

   오늘 하루에는 유령처럼 접힌 부분이 있다. 끝까지 읽히지 않은 문장들의 세계에서

   나는 여러 번 깨어났다. 한 권의 책도 없는 텅 빈 도서관이 되어서. 별자리가 사라진 밤하늘의 영혼으로.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밤의 접힌 부분을 펴자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문장들이 튀어나왔다.

 

    —《POSITION》 20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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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생년월일』.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