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봄과 여자와 고양이 - 박이화
여만
2013. 6. 1. 07:00
봄과 여자와 고양이
박이화
봄 한 번 안아 보실래요?
이제 막 겨울에서 젖 뗀
저 호기심 가득한 봄 한 번 안 키우실래요?
하루하루 몰라보게 쑥쑥 크는 어린 봄 어때요?
어느새 목련처럼 몽글몽글 젖멍울 부푸는
사춘기 봄 좀 보세요
감수성은 또 얼마나 예민한지
살구꽃 피는 첫 발자국 소리에도
봄비 같은 눈물 뚝, 뚝 흘리는
조숙한 봄 한번 보세요
그러나 주의하실 것은
하루 세 끼 아지랑이같이 모락모락 김 나는 사랑 주실 것
명심 또 명심하실 것은
잠시라도 한눈파는 사이
카르릉! 낯빛 바꾸며 토라진다는 것
그렇게 돌변한 봄은
철쭉처럼 붉고 쓰라린 손톱자국 남기고 떠나간 봄은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변심한 여자와 집 나간 도둑고양이처럼!
—시집『흐드러지다』(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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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화 / 본명 기향(己香).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대구가톨릭대학교 국문과 졸업.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경운대학교 대학원 사회체육과 졸업. 시집 『그리운 연어』 『흐드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