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여만 2013. 3. 13. 13:00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울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에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시집『희망이 외롭다』에서

-------------

김승희 / 1952년 전남 광주 출생.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같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등, 산문집 『33세의 팡세』,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등. 2012년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