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국화차를 달이며 - 문성해
여만
2013. 1. 30. 15:28
국화차를 달이며
문성해
국화 우러난 물을 마시고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된다
나는 앞으로도 도저히 이런 맛과 향기의
꽃처럼은 아니 될 것 같고
또 동구 밖 젖어드는 어둠 향해
저리 컴컴히 짖는 개도 아니 될 것 같고
나는 그저
꽃잎이 물에 불어서 우러난
해를 마시고
새를 마시고
나비를 모시는 사람이니
긴 장마 속에
국화가 흘리는 빗물을 다 받아 모시는 땅처럼
저녁 기도를 위해 가는 향을 피우는 사제처럼
텅텅 울리는 긴 복도처럼
고요하고도 깊은 가슴이니
—시집『입술을 건너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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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 1963년 문경 출생.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