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가을의 기도 - 김남호

여만 2013. 1. 18. 14:31

가을의 기도

 

      김남호

 

 

 

주여, 죄를 짓기 좋은 계절이 왔나이다

 

날로 짧아지는

저 발기부전의 햇볕을 이어서

죄를 도모하게 하소서

 

난로를 쬐게 하기 위해 손을 만드시고

동동 구르게 하기 위해 발을 만드셨듯이

따뜻한 위로를 만들기 위해 불행한 이웃들을

더욱더 불행하게 하소서

 

당신이 당신을 위해

죄를 짓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를 위해 지은

빛나는 죄들이 흐려지기 전에 새로운 죄를

짓게 하소서 이 비옥한 시간에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문학마당》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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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 / 1961년 경남 하동 출생. 2005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 『링 위의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