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피어싱 -양애경
여만
2012. 9. 21. 09:00
피어싱
양애경
여자가 된 증거로……
귀를 뚫을까요?
오, 천만에!
뚫은 귓불을 보여주며
여자가 된 증거로 해야 된대서요……
귀엽게 종알거리는 여자아이의
조그만 귓불은 귀걸이의 무게로 내려앉아 있다
—안 무서웠니?
—무서웠죠 친구가 뚫어줬는데, 장난 아니었어요
—안 아팠니?
—따끔했죠 근데요 그 친구는 자기 귀도 자기가 뚫었대요
—와, 진짜 무섭다아……
동그란 금붙이가 달린 귓불은 환하게 반짝거린다
여자아이의 눈도 즐겁게 반짝거려서,
마음은 꿰뚫리지 말고……
준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남자에게만 내어주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꿀꺽 삼키고서
—너무 무겁고 큰 귀걸이는 하지 마 가벼운 게 좋아
나는 그저 그렇게만 말할 수밖에
—네에 그럴게요
여자아이는 귀엽게 대답했다
이국적인 실루엣로맨스에서
몸을 뚫어 황금 장신구를 단,
할렘의 아름다운 여자노예가
마침내 남자의 안주인이 되었었던가?
그러나 남자들은 종종 묻는다
너를 꿰뚫었으니
이제 네 것은 모두 내 것이 되는 거야?
—시집 『맛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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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경 / 1956년 서울 출생.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사랑의 예감』『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내가 암늑대라면』『맛을 보다』. 현재 공주영상대 교수. '시힘'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