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시이소오 - 문정희
여만
2012. 9. 19. 09:00
시이소오
문정희
어둠이 내려오는 저녁 공원에서
혼자 시이소오를 탄다
이쪽에는 내가 앉고 저쪽에는 어둠이 앉는다
슬프고 둔중한 힘으로 지그시 내려앉았다가
다시 허공으로 치솟는다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것일까
한없이 무거운 슬픔의 무게를
자꾸 땅으로 내동댕이친다
피 흐르는 무릎을 안고 버둥거린다
어둠은 한 마리 짐승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짐승의 눈을 응시한다
나는 다시 시이소오를 탄다
추락은 예비되어 있고
상처는 훈장처럼 늘어가지만
이쪽에는 내가 앉고 저쪽에는 어둠이 앉는다
—시집『카르마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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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나는 문이다』『다산의 처녀』『카르마의 바다』등 13권.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