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분수의 방식 - 김유자

여만 2012. 9. 7. 09:00

분수의 방식

 

           김유자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할 때

나는 테니스 라켓을 들고 벽치기하는 사람

공은 날아가고

허공이 주-욱 딸려갔다가

나에게로 쏟아져 온다

 

언제나 돌아온다, 깨어져서

돌아와

소금을 뿌리자 밀물인 줄 알고 튀어 오르는 맛조개처럼

나는 흥건히 젖는다

 

앞날에 사로잡혀

앞날은 공처럼 굴러가지만

잔디밭으로 굴러가 잊혀진 공은

텅 비어버린 제 속을 들여다보거나

바람에 귀 기울이거나

내려앉은 새의 발가락에 새겨진 여행기를 읽으며

앉아서 천리를 보는 계절,

 

천리를 보아도 언제나 제자리인

계절이

 

목까지 차올라 출렁거리다

갯벌을 밀어 올리는 비명들,

침묵들,

사이를

철새는 날아가고 철새는 날아오고

 

    —《문학청춘》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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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자 /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200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