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시간이 사각사각 - 최승자
여만
2012. 9. 3. 09:00
시간이 사각사각
최승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어허 사실은
(통시성의 하늘 아래서
공시성인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시간이 아삭아삭
시간이 바삭바삭
어허 기실은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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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 1952년 충남 연기 출생, 수도여고와 고려대 독문과에서 수학. 계간 〈문학과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와 시선집 『주변인의 초상』 번역 시집 『죽음의 엘레지』를 비롯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 『자살 연구』 등의 역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