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단서 -신정민
여만
2012. 8. 12. 13:31
단서
신정민
나는 내 죄에 대한 단서를 매일 몇 가닥씩 흘리고 산다
사랑한 죄, 입 다문 죄, 눈 감아준 죄,
나의 죄는 머리카락으로 자란다
생각으로 죽인 사람들의 피가 자란다
자라서 바닥에 떨어진다
걸레로 훔쳐낸 물증이 아침마다 한 주먹이다
아버지가 떨어져 밟힌다
어머니가 먼지와 함께 뒹군다
머리를 곱게 빗은 내가 청소기에 빨려 들어간다
잘 썩지 않는 불안한 증거는 구석을 좋아한다
쥐어뜯긴 생각들은 자주 수챗구멍을 막는다
나는 매일 아침 도망치고 있는 내 발자국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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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민 1961년 전북 전주 출생. 2003년 〈부산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국민카드 사이버문학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