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구부러진 길 - 이준관

여만 2012. 7. 9. 09:00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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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 / 1949년 전북 정읍군 북면 출생. 전주교육대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74년 《심상》신인상 당선. 동시집 『크레파스화』『씀바귀꽃』『우리나라 아이들이 좋아서』『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시집 『황야』『가을 떡갈나무 숲』『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 『부엌의 불빛』등. 방정환 문학상, 소천 아동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영랑 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