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2. 6. 27. 09:00

크레바스

        박후기




아스팔트 도로가 폭삭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자동차가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집중호우 때 생긴 틈으로 물살이 파고들었고, 아스팔트를 떠받치고 있던 흙과 자갈이 떠내려갔다. 아스팔트 포도는 한 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자동차는 그곳이 바닥인 줄 알고 달렸다.

빙산은 물 위에 떠 있고, 대륙은 맨틀 위에 떠 있다. 나는 가끔 발 아래가 의심스럽다.

저수지 중앙은 얼지 않았다. 저수지가 숨쉴 때마다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물고기들은 얼음장 밑에서 행복했다. 나는 아파트 7층에 산다.

고상돈은 매킨리봉 크레바스에 빠져 죽었다. 자일에 매달려 날개가 꺾인 채 발견되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새들이 나는 곳이 모두 하늘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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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기 / 1967년 경기 평택 출생. 2003년 〈작가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로 신동엽창작상 수상.


  * 이 시를 읽고 또 읽고 '새들이 나는 곳이 모두 하늘은 아니었다.' 끝 부분에 도돌이표를 놓고 읽기를 여러번..... 왠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묘사한 것 같아서 말이다. 위험을 모르고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한 치 앞의 미래도 파악하지 못 하고 아웅다웅 오늘을 살아가는 나. 시인의 말처럼 떨어지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무언가에 매달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 매달림에 진땀 흘릴지라도 땀내나는 삶이 아니라면 어디 그 삶이 살아있는 생이이다 말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