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샴푸를 하는 동안 - 마경덕

여만 2012. 6. 16. 09:00

샴푸를 하는 동안

             마경덕



벨이 멎고 우체부는 돌아섰지. 수챗구멍이 거품을 토하는 순간, 멀리서 온 소포는 되돌아갔지. 간절한 것들은 그렇게 비껴가지. 두 손이 한 곳에 집중하는 동안, 거품에 귀와 눈이 감기는 순간 후두둑 창문으로 소나기 들이치고 베란다 분홍 바이올렛이 쓰러지고 침대는 잠든 아이를 떨어뜨렸지. 2분만에 소포는 반송되고 마음은 돌아서고 깨진 화분 위로 고양이와 아이 울음이 뒤섞였지. 안방까지 흙 묻은 발이 겅중겅중 뛰어다녔지. 욕실에서 샴푸통을 꾹꾹 누르는 동안 옆집 옥상으로 빨래가 날아가고 이층으로 올라온 벨은 거실을 한 바퀴 돌아 계단을 내려가고 고양이 발톱은 아이의 낮잠 속으로 뛰어들고.

부재중3
네가 세 번이나 다녀간 2분


   - 시인시각 (200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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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 1954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신발論』

  * 단, 2분 동안에.....

이럴 수가! 우리가 잠깐만~! 하는 잠깐이라는 잠깐 속에 길고 많은 것들이 있다.

누구를 잠깐 불러 세우는 일도 길게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