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칫솔질을 하며 - 김종철

여만 2012. 6. 8. 09:00

칫솔질을 하며

           김종철




요즘은 이 닦는 법을 다시 배웁니다
하루에 세 번, 삼종기도처럼 닦습니다
아침에 하는 칫솔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온종일 해둘 말과 생각을 구석구석 닦습니다

점심때 하는 칫솔질은
생각 없이 불쑥 튀어나온 독설과
이빨 사이 낀 저주를 닦고 파냅니다
어쩌다 부러진 이쑤시개의 분노와 마주칠 때는
이내 거품을 물고 있는 후회로
양치질을 한 번 더 해둡니다

잠들 때 하는 칫솔질은
하루 종일 씹고 내뱉은 죽은 언어의
껍질을 헹구어 내고
생쥐같이 몰래 들락거렸던 당신의
목구멍에 경배 드리는 일입니다
하루의 재앙이 제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때늦은 반성문처럼 졸리운 칫솔로
꿈의 혓바닥까지 박박 긁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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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 1947년 부산 출생.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서울의 유서(遺書)』『오이도(烏耳島)』『오늘이 그날이다』『못에 관한 명상』『등신불 시편』. 현재 도서출판 〈문학수첩〉과 계간 〈문학수첩〉대표 및 발행인. 윤동주 문학상, 남명 문학상, 편운 문학상 수상.


  * 우리가 종일토록 내뱉는 말, 덕을 쌓는 일도 재앙을 쌓는 일도 다 입을 통해 나왔다는 시인의 통찰을 읽습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양치질을 하듯 세상에 뱉어내는 말이 덕을 쌓도록 기도하듯 정성을 다해 닦아야겠다는 생각 다시금 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