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그랬으면 좋겠네 -이시하

여만 2012. 4. 11. 10:28

그랬으면 좋겠네

              이시하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 가는 게 싫지는 않냐 물으면 흥, 흥, 콧방귀나 뀌었으면 좋겠네

 

            —《수주문학》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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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 / 본명 이향미. 1967년 경기도 연천 출생. 2006년 제12회 지용 신인문학상 당선. 2008년 제10회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푸른 생으로의 집착』. 2009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시부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