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원정(園丁) - 장만호

여만 2012. 3. 12. 19:59

원정(園丁)

            장만호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
하늘은 어디에 이 많은 음들을 숨겨두고 있었던 걸까
부딪히자마자 세상을 온통 악기로 만드는
환한 빗방울들, 이런 날이면
새들도 타악기다
흙들은 더욱 겸손해져서
길 잃어 젖은 개미에게도 발자국을 허락한다
덜 자란 풀꽃들을 솎아내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무엇을 가꾼다는 것은 잘라 내거나 뽑아내는 일이라는 걸
이 정원에서 배우기도 했지만,
모르겠다 꽃들에게도 말은 있어
그 꽃말들을 듣다 보면
작은 것들일수록 제 뿌리를 다해 흔들리거나
은화(隱花)식물처럼 열망의 보따리를 감춰두고 있다는 것을
이 정원의 저녁
작고 덜 자란 것들이 나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잘 살고 있을까,
영희, 영호, 영수……
내가 이름 붙인 부끄러운 꽃말들
볼품 없는 한 생이 떨군,
젖은 꽃잎들

아침의 꽃들을 저녁에 주워 올릴 때
깊은, 나무들이 울리는 푸른 풍금의 소리


* 루쉰(魯迅) 「조화석습(朝花夕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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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호 / 1970년 전북 무주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 졸업.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水踰里에서' 당선. 시집 『무서운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