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뻘밭- 이용헌
여만
2010. 10. 11. 16:36
뻘밭
이용헌
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물음표 모양의 쇠갈고리를 들고
폐지뭉치를 퍽퍽 찔러대는 그의 오른손은
의문투성이다
다섯 손가락 중 세 개는 보이지 않았다
남은 두 개는 엄지와 검지뿐이었다
검은 눈썹 아래 짙푸른 눈망울을 끔뻑이며
온종일 1톤 트럭에 폐지를 싣는 그의 손놀림은
뻘밭을 기어가는 게발 같았다
끼니때마다 그의 왼손에는 바다가 들려 있었다
그가 마른기침을 할 때마다 파도는 넘실거렸다
가끔은 은빛 숟가락을 입에 문 게발이
펄펄 끓는 순두부 사발에 꼼지락거리다가
땡그랑 댕댕, 나동그라지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붉은 노을이 제본소 바닥에 흩어졌다
모르겠어요 이제는 맵지 않아요
그의 혀끝은 이미 바다 건너 두고 온 맛과 키스와
달콤한 모국어를 잃어버렸다
세 개의 손가락이 잘려나간 이후
그는 더 이상 아내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방글라데시,
인도양의 푸른 파도가 제본기의 책갈피처럼
펄럭이며 밀려올 때면
그는 공장 한 귀퉁이 폐지뭉치 위에서
낡은 지도책을 펴 놓고
엄지와 검지로 바다의 거리를 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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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헌 시인
1959년 빛고을(光州) 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 로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1959년 빛고을(光州) 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 로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