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에스프레소 - 김종미
여만
2011. 12. 22. 08:00
에스프레소
김종미
꽃이 지면서 다급히 돌아보는 눈길에
눈이 내린다
바람 한 점 없이 오직 중력의 힘으로만 내리는 눈은
어느 청각 장애자의 눈에 비친 당신의 입술이다
눈이 쌓인 그 자리는
꽃을 사랑하여 몸서리치게 쓸쓸해진 꽃그늘의 무덤
바람 한 점 없는 십초가
너의 장례였으니
이 겨울 나의 슬픔은
짧고도
뜨겁고도
쓰디 쓴 불랙홀
사랑은 언제나 그랬다
ㅡ격월간《정신과표현》2010년 1~2월호
-------------------
김종미 / 1957년 부산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와사상》 편집장 역임. 시집 『새로운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