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봉골레스파게티 레시피 -김후영

여만 2011. 12. 13. 10:00

봉골레스파게티 레시피

  김후영

 

 

삶은 봉골레스파게티 같은 거야 맛이 밋밋하잖아?

거기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어떨까? 와인은 여행과도 같지

생활의 느끼한 맛을 정화시켜 바닥까지 비워내게 하거든

자, 이제 만들어 볼까?

면은 끓는 물에 8분 정도 삶아야해 이건 삶의 긴장 같은 거야 긴장이 풀어지면 갑자기 늙든가 비만이 되는 거와 같아 너무 퍼지면 요리가 볼품없어지지

다음은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저민 마늘을 볶아야 해 마늘은 삶의 기반, 신뢰라는 거지 신뢰는 잡스러운 맛을 잡아주거든 올리브오일은 재즈 같은 거야 재즈는 우리를 연애하고 싶게 하잖아? 부드럽게 감성을 자극하지

마른 고추와 홍합도 넣어야겠지? 이건 기념일의 선물 같은 거야 빠뜨리면 평생 피곤해지지

여기에 소금과 화이트 와인을 넣고 잘 끓였으면 이제 삶아놓은 면과 볶은 재료들을 섞어 볼까? 이질적인 것들끼리 어울리기 위해 소란을 피우는 이건 부부싸움 같지?

다 됐으면 식지 않도록 적당히 데운 그릇에 담아야겠지?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 사랑도 할 줄 아는 거니까

완성된 요리에 무언가 빠진 듯 허전해지거든 바질허브를 얹어봐 푸른 잎이 삶을 향기롭게 하지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즐기게 될 거야 혼자 먹는 저녁이 쓸쓸하지 않을 거야 후추는 기호에 따라 약간만 넣어야 될 걸? 너무 매우면 눈물이 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우리가 요리를 하는 건 외로워서가 아니야 개성 다른 재료들이 섞이고 엉겨 맛이 나는 걸 즐기고 싶은 거지 그렇지 않니?

 

         —《미네르바》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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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영 / 2006년 《미네르바》로 등단. 서울 산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