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1. 11. 28. 12:45

꽃들

       이만섭

  

“꽃들”이란 말,

이 아름다운 낱말 속에 숨어 있는 이름들을

낱낱이 호명하지 못하고

그냥 꽃들이라는 단음절어로 부를 때

그 지순한 꽃의 마음을 생각하면

왠지 무성의한 것은 아닌지 나는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내 먼저 친숙한 말인 듯 “꽃들”이라고 부르는

이 흔연스러운 기쁨을 어쩌랴,

우리의 일상은 나무도 돌멩이도 앞 냇가도

비로소 꽃들로부터 환해진다

그 섬약한 손길이 닿지 못할 때

햇빛은 어떻게 나무의 열매를 지을 것이며

바람은 무슨 흥으로 불어올 것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이 좁혀지고

그 눈빛마다 생기가 도는 것도

꽃들이 완충지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산자락 휘감아 아름 동인 푸름과

강물에 물줄기 건네준 골짜기의 시원에 이르기까지

꽃들의 의미는 닿아 있다

샘이 솟고 새가 노래하는 이유가

꽃들이 피고 지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니

저 어두운 밤을 달려 다다른 아침

가슴을 깨우는 강물이여

말간 낯으로 피어난 꽃들이 눈부시다

 

         —《유심》 2010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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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 1954년 전북 고창 출생. 2010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직선의 방식」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