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꽃 같은, 또는 개 - 이화은

여만 2011. 11. 9. 10:00

꽃 같은, 또는 개

 

                     이화은

 

 

 

목백일홍 나무 밑에서 개가 새끼를 낳았다

꽃판 같은 붉은 젖꼭지에 매달린

희고 검은 여섯 송이 강아지들

 

올해 들어 세 번째

마지막 꽃을 피운다는 늙은 나무가

젖을 다 빨리운 어미개처럼

허리가 굽은 채 일어서는데

등에 업힌 어린 꽃들이 오물오물

입질하는 법을 저 혼자 배운다

 

꽃과 개와 가을과,

저들은 잠시 몸을 바꾼 것일까

낯선 나와 아득한 풍경이 서로 마음을 뒤섞고 있는데

 

새끼를 토해 낸 무한천공 어미개의 눈 속으로 흰 나비가

팔랑팔랑 한 떼의 허공을 몰고 겁도 없이 날아가고

 

도대체 이 만개한 가을은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란 말인가

 

    —《현대시학》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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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1947년 경북 진량 출생.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절정을 복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