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새들이 조용할 때 - 김용택

여만 2011. 10. 26. 09:00

새들이 조용할 때  

 

                       김용택 

 

 

 

어제는 많이 보고 싶었답니다.

그립고, 그리고

바람이 불었지요.

하얗게 뒤집어진 참나무 이파리들이

강기슭이 환하게

산을 넘어 왔습니다.

그대를 생각하면

단이 닳아진 산자락들이 내려와

내 마당을 쓸고

돌아갑니다.

당신을 사랑했지요

평생을 가지고 내게 오던, 오! 그 고운 손길이

내 등 뒤로 돌아왔지요.

풀밭을 보았지요.

풀이 되어 바람위에 눕고

꽃잎처럼, 날아가는 바람을 붙잡았지요.

온몸이 다 꽃이 되었지요.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리고 사랑하기까지

내가 머문 마을에는

닭이 울고

나는 수도 없이

그대에게 가는 길을 만들어

아침을, 저문날을

걸었지요.

사랑한다고 말할까요.

해는 지는데

새들이 조용할 때

물을 보고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그리고

당신이 한없이 그리웠습니다.

사랑은

어제처럼

또 오늘입니다.

여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을 만들고

오늘도 강가에 나앉아

나는 내 젖은 발을 들여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