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1. 10. 5. 16:32

하현(下弦)

            이현서

  

 

밤이면 내 몸속에 풀여치 한 마리 산다

층계 밑 구석진 곳에서 여린 날개 비비는 소리

가늘고 고운 울림으로 방 한 칸을 들이는 모양이다

긴 더듬이로 달빛을 찍어 문풍지를 바르고

외풍이 스미는 틈 사이엔

여문 추억을 꼭꼭 채워 넣는다

슬픔이 저장된 시린 악보를 타고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

네게 닿을 듯 닿지 않는 긴 울음이

휘적휘적 밤의 허리를 휘감는다

참을 수 없는 허공의 무게를 견딘 날개가

풀섶에 내린 이슬에 젖곤 했다

찌- 찌르르 풀여치 울음소리 어둠을 타전하고

몇 번의 안부를 묻던 꽃향기 짙은 기억들

맨몸으로 이별의 하중을 가까스로 견딜 무렵

오래 함구하던 슬픔 위로

달이 무너진다

 

                   —《문학. 선》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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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서 / 경북 청도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과, 교육학과 졸업. 2009년 《미네르바》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