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장작 패는 법 - 복효근

여만 2011. 9. 24. 11:33

 

장작 패는 법

            복효근

 

이제 때가 되어

베어진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에겐 추억이 있다네

잘린 나무토막을 보면 나이테가 보이지

그 나이테가 나무의 온 몸에 결을 만들고 있지

그 결을 따라 바람이 드나들고

물이, 말하자면 나무의 피가 돌았지

그래서 말인데

장작을 팰 땐 포정*이 소를 다루듯 해야 하네

무리한 힘을 줄 필요가 없어

나무가 이룬 결을 따라 도끼날을 집어넣어주면 돼

마치 지수화풍(地水火風)이었던 그 모습으로 돌려보내주기 위해

천장사가 육신을 잘게 나누어

새들에게 먹이는 조장처럼 말이야

포정의 소는 뼈와 살이 다 분리되어 무너지는 순간까지

제 몸에 칼이 들어와 후비고 다녔다는 걸 몰랐다잖나

무엇보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무가 물이었던 시절

나무가 바람이었던 시절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생각으로

나무가 미리 내놓은 길을 찾아

그 길을 넓혀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나무가 쩍 박수소리를 내며 벌어진다네

주의할 점도 있지

제 몸의 상처를 감싸고 돌처럼 굳어진 옹이엔

도끼날을 들이대지 않아야 하네

옹이는 나무의 사리이므로

상처를 사리로 만드는 기나긴 나무의 생에 대한 예의이므로

온몸에 불을 붙이고 제 갈 길 제가 밝히고 가는 장작,

장작에 대한 예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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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 : <장자(莊子)>에 나오는, 소 잡는 데 도가 튼 백정.

 

 

 

                              —《시작》 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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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새에 대한 반성문』『누우 떼가 강를 건너는 법』『목련꽃 브라자』『마늘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