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기(解凍期)
위선환
기러기 몇 마리가 한 줄로 날아서 임진강을 내려왔다.
기러기들의 아랫배가 강바닥에 스치고 닿았다. 강바닥에서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놀들고 전신이 물들자 여자는 말없이 누워주었다.
훌훌 벗더니 제 몸 위로 강을 끌어올리고는 얇다랗게 말갛게 유리판 같이 얼었다.
여자는 가린 것 없이 들여다보였지만
어떡할까,
나는
망설이다 말았다.
내가 다 벗고, 맨살로, 놀빛 비낀 겨울강의 살얼음판 위에 엎드릴 것인가.
강이 녹고 여자도 녹아서 흠뻑 젖을 무렵, 햇살 환한 날 다시 찾아가서, 무겁고 울퉁불퉁한 내 몸을 보여주고
한 번 더 누워주겠느냐고 물어보려 한다.
- <열린시학> 200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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